파산이 수치일까? 제2차 납세의무와 법률적 책임 회피의 전략적 선택
법원 관리하에서의 깔끔한 퇴장이 위대한 재기의 발판 될 수 있어
[전문가칼럼] '역대 최대' 법인파산 2282건의 경고… 한계기업, '질서 있는 퇴장' 준비해야
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냉혹한 현실
최근 발표된 법원통계월보의 수치는 대한민국 실물경제의 하부 구조가 얼마나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2025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총 2282건으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3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 995건, 2022년 1004건으로 1000건 안팎을 유지하던 파산 신청이 2023년 1657건, 2024년 1940건을 거쳐 마침내 2000건의 벽마저 깨뜨린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통계의 상승이 아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이른바 '3고(高)' 현상의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유동성을 완전히 고갈시킨 결과물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6.8%가 지난해 경영환경을 '어려웠다'고 평가했으며, 그 핵심 원인으로 내수 부진(79.8%)을 꼽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업들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손상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나타난 2025년 상반기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0.5배에 불과하다. 전체 중소기업의 56.9%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1 미만'의 상태에 빠져 있다.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이 지난해 기업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이 총 4조 39억원으로 최근 10년래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시장의 자율적 신용 회복 기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구조조정 전문가의 시각에서 볼 때, 현재의 위기는 단기적인 경기 부침이 아니라 구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연명 치료식 자금 지원에서 벗어나, 생존 가능성이 없는 한계기업들의 '질서 있는 퇴장(Exit)'을 유도하는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한계기업의 냉정한 자기진단과 '계속기업가치'의 냉혹한 계산법
경영난에 처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흔하게 범하는 오류는 "시간이 지나고 경기만 회복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고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세계에서 기업의 생사(生死)를 결정하는 기준은 철저하게 수치화된 '기업가치'이다.
기업 구조조정 및 회생 절차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계속기업가치(Going-concern Value)'와 '청산가치(Liquidation Value)'의 비교다. 기업을 유지할 때 얻을 수 있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기업을 당장 해체하여 자산을 매각할 때의 가치보다 커야만 기업은 존속할 명분을 얻는다.
특히 과다한 부채로 허덕거리는 이른바 '좀비기업(한계기업)'들은 미래의 영업이익 창출 능력을 냉정하게 산정해 보아야 한다. 냉혹한 시장 환경에서 과다한 부채로 허덕거리는 한계기업들은 향후 10년 동안 무담보채무의 30% 정도를 분할 변제할 수 있는 영업이익의 합계 총액, 즉 계속기업가치를 창출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나마 여력이 남아 있을 때 법인파산을 신청해서 법인 해산을 도모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법원의 법인회생(법정관리)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의 회생계획기간 동안 일정한 영업이익을 내어 채무의 상당 부분을 분할 변제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향후 10년 동안 무담보채무의 약 30%조차 변제할 수 없을 정도로 영업이익 창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무리한 회생 시도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매출은 정체되어 있고 이자보상배율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막연한 유동성 공급에 기대어 연명하는 것은 기업 가치를 매일 갉아먹는 행위에 불과하다.
왜 법인파산인가? 제2차 납세의무와 법률적 책임 회피의 전략적 선택
많은 경영자들이 '파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 효과와 실패자라는 자책감 때문에 끝까지 파산 신청을 미루다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자금이 완전히 바닥나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세금을 체납하며, 거래처에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하는 식의 '자연사(自然死)'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영자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최악의 선택이다.
법인파산은 결코 부끄러운 도피가 아니라, 법률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정리 절차'이자 경영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기업이 그나마 여력이 남아 있을 때, 즉 파산 절차를 주도할 최소한의 예납금과 비용이 남아 있을 때 법인파산을 신청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제2차 납세의무의 위험 분산 및 회피다. 법인이 세금을 체납한 상태에서 해산되거나 재산이 부족할 경우, 과점주주나 무한책임사원 등 실질적 경영자에게 제2차 납세의무가 부과되어 법인의 세금 부담이 경영자 개인의 전 재산으로 전가될 수 있다. 그러나 법원 주도의 공정한 파산 절차를 거쳐 법인의 남은 재산을 투명하게 환가하여 세무관청에 우선 배당하게 되면, 경영자 개인이 짊어져야 할 제2차 납세의무의 부담을 법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최소화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
둘째, 민·형사상 법률적 대표자 책임의 면제다. 기업이 도산 위기에 직면하면 대표이사는 온갖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 및 퇴직금 미지급으로 인한 형사처벌 위험, 거래처로부터의 사기죄 고소, 수표법 위반, 그리고 채권자들의 극단적인 독촉과 소송이 그것이다. 법인파산이 선고되면 법원이 지정한 '파산관재인'이 모든 권한을 이어받아 기업 재산의 처분과 채권자들에 대한 배당을 독점적으로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들의 개별적인 강제집행이나 추심 행위가 금지되므로, 대표이사는 사적인 보복이나 불법 추심으로부터 해방되며 고의적인 재산 은닉이나 사기 범죄가 없는 한 법률적 대표자 책임에서 벗어나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산업 기반 붕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패러다임 시프트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의 지적처럼, 지난해 파산 신청이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단순한 경기 변동을 넘어 경영 환경 자체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되었음을 뜻한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건실한 전후방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무너지는 '도미노 부실'로 이어져 국가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당장 정부와 금융권은 물가와 환율 안정, 내수 진작 등 거시경제적 처방을 내놓아야 하지만, 동시에 미시적으로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의 효율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신속한 신용위험평가와 한계기업 분류: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의 대위변제 규모가 4조 원을 넘어선 만큼, 보증 연장이나 만기 연장 중심의 온정주의적 금융 지원을 과감히 축소해야 한다. 살릴 수 있는 기업에는 집중적인 유동성을 공급하되, 회복 불가능한 기업은 조기에 파산 절차로 유도하는 선별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 사전적 도산 컨설팅 지원 확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법인파산 제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법률적·재무적 비용을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사전 도산 컨설팅 프로그램'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비용이 없어 파산을 신청하지 못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 재기 지원 프로그램(Re-start) 활성화: 파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정당한 실패를 겪은 경영자들이 과거의 실패 경험을 자산 삼아 재창업하거나 전문 인력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신용회복 및 재기 지원 시스템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아름다운 퇴장이 위대한 재기를 만든다
법인파산 신청 2282건이라는 숫자는 대한민국 경제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 시그널이다.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기업이 영원히 생존할 수는 없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는 작금의 형국에서, 무의미한 연명은 기업 경영자 자신은 물론 노동자, 채권자,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친다.
미래의 창출 가능한 계속기업가치가 무담보채무의 30%조차 갚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면, 과감히 법인파산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경영자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책임감 있는 마지막 전략이다. 법인 해산을 통해 제2차 납세의무와 법률적 책임의 사슬을 끊어내고 재산과 신용을 보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영자 개인의 인생을 지키고 향후 올바른 재기를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정부와 사회 역시 파산을 경제적 사망이 아닌,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신진대사'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질서 있는 퇴장이 원활해질 때, 비로소 대한민국 경제는 부실의 늪을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노현천 필진기자는 공익사단법인 한국기업회생협회 부회장 겸 기업회생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사례뉴스] >>> https://www.cas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381
[YouTube] >>> https://youtu.be/PpO25dHVs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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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Joseph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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